요즘 아파트 전세가격이 많이 오르면서 깡통전세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다. 자칫 매매가격이 하락할 경우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보증금을 날릴 가능성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일단 집주인의 대출금과 세입자의 전셋값을 합쳐 시세의 80%를 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내 보증금을 지키기 위해선 법적인 안전장치를 마련해두는 것도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보증금을 확실하게 지키는 방법으로 대항력을 포함한 확정일자, 전세권 설정 등기를 많이 고려한다. 과연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게 유리할까. 일단 비용 면에서는 확정일자가 낫다. 이사를 하면서 간단하게 하면 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전세권 설정 등기를 하면 확정일자보다 무조건 안전하고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는 오해이다. 어떤 경우 오히려 확정일자가 유리한 측면도 많다.
1. 확정일자, 전세권 설정이란
다음달 아파트 전세로 이사를 가는 김경현(40세, 가명)씨. 김씨는 이사(점유)와 함께 주민등록(전입신고)을 이전하고, 확정일자를 받을 것이다. 요즘은 세입자들이 주민센터에서 주민등록을 하면서 확정일자를 동시에 받는 경우가 많다. 비용은 600원 정도로 아주 저렴하다.
확정일자는 서민들이 보증금을 확실하게 지킬 수 있는 비교적 손쉬운 방법이다. 다만 확정일자는 대항력 요건을 갖춰야 효력이 생긴다. 다시 말해 확정일자는 대항력을 전제로 갖춰지는 법적 보호 장치로 볼 수 있다. 대항력은 제3자에 대해 자신의 임차권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다. 대항력은 이사와 주민등록을 한 다음날 오전 0시에 효력이 발생하므로 그 이전에 받아둔 확정일자는 의미가 없다. 대항력은 세대원 일부라도 계속해서 주민등록이 남아있어야 하고 또 실제 거주해야 성립할 수 있다.
확정일자를 받으면 채권이 물권(근저당 등)으로 바뀌면서 후순위자에 비해 우선적으로 배당을 받을 수 있다. 확정일자는 주민센터뿐만 아니라 법원, 등기소, 공증기관에서도 가능하다. 서류는 임대차계약서와 신분증만 있으면 가능하다. 만약 보증금을 인상해 재계약할 경우 인상분에 대한 별도의 계약서를 작성하고, 주민센터에서 증액된 부분의 확정일자를 다시 받는 것이 좋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기존의 계약서는 반드시 보관하고 재계약서에 기존 임대차 계약이 유효하다는 내용의 특약사항을 기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이다.
전세권 설정 등기 서류는 좀 복잡하다. 집주인의 인감증명서 및 주민등록등본, 세입자의 주민등록등본 등이 있어야 한다. 집주인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전세권 설정 등기는 보증금 분쟁 때 확정일자보다 전셋값을 빠르게 돌려받을 수 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전세권도 물권이므로 확정일자와 효력은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수수료(전세의 0.2%)와 법무사비 등 적지 않은 비용이 들어가는 게 단점이다. 전세권 설정은 세입자가 다른 곳으로 주소를 옮기거나 점유를 하지 않아도 효력이 발휘된다. 오피스텔 등 일부 비주택에서 집주인이 주소를 옮기지 못하게 할 경우 전세권 설정을 요구하는 것이 좋다. 만약 거부할 경우 보증금을 대폭 낮추고 월세도 인하를 요구하는 등 대비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2. 묵시적 갱신 때 어느 것이 유리할까
묵시적 계약갱신에 한해서는 확정일자가 전세권보다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계약의 갱신)에는 ‘임대인이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1개월 전까지의 기간에 임차인에게 갱신거절의 통지를 하지 않거나 계약조건을 변경하지 않으면 그 기간이 끝난 때에 전 임대차와 동일한 조건으로 다시 임대차한 것’으로 본다. ‘임차인이 임대차기간이 끝나기 1개월 전까지 통지하지 아니한 경우에도 또한 같다’고 규정돼 있다. 따라서 묵시적 계약갱신의 경우 세입자는 자신의 임대차 존속기간 2년을 보장받는다. 세입자가 집을 나가겠다고 통지를 받은 날부터 3개월이 지나면 집주인은 전세보증금을 되돌려줘야 한다.
전세권은 묵시적 갱신을 믿다가 낭패를 당할 수 있다. 민법 제313조(전세권의 소멸통고)에는 ‘전세권의 존속기간을 약정하지 아니한 때에는 각 당사자는 언제든지 상대방에 대하여 전세권의 소멸을 통고할 수 있고 상대방이 이 통고를 받은 날로부터 6월이 경과하면 전세권은 소멸한다’고 돼 있다. 따라서 전세권 설정을 한 뒤에 묵시적 계약갱신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집주인이 나가라고 요구하면 임차인은 6개월 이내 집을 비워줘야 한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최광석 변호사는 “전세권설정 기간의 변경이나 연장을 등기부상에 명시해야 그 연장의 효력이 완전한 자격을 취득하게 된다”고 말했다. 묵시적 계약갱신처럼 가만히 놔뒀다가는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3. 수선 의무
민법 제309조(전세권자의 유지, 수선의무)에 따르면 ‘전세권자는 목적물의 현상을 유지하고 그 통상의 관리에 속한 수선을 하여야 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확정일자를 받을 경우 세입자의 유지, 수선 의무는 제한적이다. 가령 보일러가 고장 날 경우 전세권자는 그 비용을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확정일자를 한 세입자의 경우 고장이 과실에서 비롯되지 않았다면 그 비용은 주인이 내야 한다.
4. 법원 경매 때 어느 것이 유리할까
단독주택에 전세로 들어갔다가 법원경매로 넘어간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일반적으로 확정일자를 갖춘 경우 주택뿐만 아니라 대지의 낙찰대금을 합산해 우선배당이 가능한 구조다. 하지만 전세권은 대체로 주택(건물)에만 등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물권으로서 건물의 사용 수익에 대한 권리를 등기한 것이므로 토지분 낙찰대금은 우선 배당에서 제외된다. 건물가격이 거의 없는 낡은 재개발 후보지 단독주택에 전세로 들어갈 때에는 전세권 설정등기를 너무 과신하면 안된다. 꼭 전세권을 설정한다면 확정일자를 함께 받아놓는 것이 좋다.
또 전세만기 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 확정일자는 임차보증금 반환소송 후 강제집행을 신청해야 한다. 하지만 전세권 설정은 판결 없이도 경매를 신청할 수 있다. 그리고 확정일자는 경매 시 배당요구를 해야 하지만 전세권은 배당 신청 없이도 순위에 따른 배당이 이뤄진다.
5. 이것만은 조심
요즘 아파트 입주 단지에서는 중도금 미납으로 가압류가 걸린 경우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가압류가 걸려있는 경우 주민등록을 옮기고 이사를 하고 확정일자를 받거나 전세권을 설정하더라도 완벽한 보증금 보호가 어렵다. 선순위로 가압류가 설정돼 있으면 낙찰금을 안분 배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입주하려는 아파트를 지은 건설회사에 확인해서 반드시 가압류 설정 여부를 체크해야 한다.
또 선순위 대출이 있는 상태에서 전세가비율(집값 대비 전셋값 비율)이 높으면 확정일자나 전세권 설정 등기로 전세보증금을 온전히 지키기 힘들다. 나중에 경매로 부쳐져 내 보증금을 날릴지 몰라 걱정이 되면 집주인에게 잔금 때 일부 갚도록 하는 방법도 좋다. 전세가비율을 줄이는 전략이다. 다만 집주인이 잔금 때 등기소를 방문해 감액등기 신청을 하는 지 체크해야 한다. 이런 확인을 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채권최고액의 한도 내에서 추가대출이 가능하므로 꼭 확인하고 넘어가야 한다. 또는 인상된 일부 전세금액을 월세로 돌리는 반전세나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하는 방법도 고려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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